기존 영화감독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 기술을 총동원해 제작한 ‘본격 생성 AI 영화’가 등장했다. 단순히 생성 AI 도구를 활용한 것뿐 아니라 전문 업체가 합류, 자체 대형언어모델(LLM)을 활용하고 기존 모델을 미세조정하는 방식으로 퀄리티를 극대화한 게 특징이다.
나라지식정보(대표 손영호) 산하 영화제작사 나라AI필름은 다음달 6일까지 씨네아트 리좀 외 4곳에서 동시 진행하는 창원국제민주영화제 인공지능(AI) 부문에 자체 제작 영화 ‘AI수로부인(AI Mrs. Suro)’을 출품 및 상영한다고 22일 밝혔다.
AI수로부인은 생성 AI로 제작한 작품이다. 20일에 이어 26일 창원 씨네아트리좀에서 상영을 앞두고 있다. AI 판타지 및 교육 장르로 러닝타임은 25분에 달한다. 고대가요 ‘구지가’와 향가의 ‘해가사’ ‘헌화가’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메인 시나리오는 심은록 감독이 담당, 대부분 제작 과정에 생성 AI를 이용했다. 기술적인 부분은 나라지식정보 산하 메타버스연구소가 담당했다. 특히 박수연, 노지윤 연구원 등이 이미지 영상 생성과 캐릭터 목소리, 음악 작업 등에 기여했다.
GPT-4, 클로바 X, GPT-3.5 등 대형언어모델(LLM)로 시나리오를 생성한 뒤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등으로 이미지를 생성했다. Gen2, D-ID로 영상을 구축하고 클로바더빙을 이용해 인물의 목소리까지 만들었다. 최종적으로 사운드로우(Soundraw)를 활용해 음악을 생성했다.
자체 개발한 sLLM ‘나름(NA-LLM)’을 투입했으며, 스테이블 디퓨전을 직접 미세조정해 활용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0.8초부터 8초까지 다다르는 수천컷의 생성 영상에서 좋은 결과물을 골라냈다. 이 과정에는 소수 인력이 한달 동안 ‘노트북 3대’를 동원했다. “기존 영화와 같이 거대 자본이나 전문 인력 도움 없이 ‘개인 영화 제작 시대’를 앞당긴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강조했다.
심은록 감독은 “백남준이라면, AI 시대를 어떻게 맞이했을까라는 질문으로 작품을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적극적 소통으로 ‘미래의 고충’에 맞섰던 백남준의 가치관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 감독은 이전부터 창원 영화제 및 지리산국제환경예술제(JIIAF)에 영상 및 AI 영상을 출품해 왔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와 FINA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기념전(2019), 평창패럴림픽 올림픽 전시(2018), 유네스코(파리 2018, 2015),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2016), 130주년 한불수교전 등 수십회의 국제전을 기획한 경력도 있다.

하늘과 바다와 소통하는 설화 속 주인공 수로부인을 등장시킨 것에는 이유가 있다. 설화 속에서 해룡이 수로부인을 납치해 바다로 데려가자, 사람들은 부인을 구하기 위해 해가를 지어 부른다. 심 감독은 “제의적인 의미도 있었겠지만 전쟁, 힘, 권력, 자본이 아닌 ‘예술’로 사람을 구한다는 게 감동적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사실 생성 AI를 활용해 영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최근 국내외에서 일반화되는 추세다. 그러나 심 감독은 형식과 내용에서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된다고 설명했다.
“AI로 만든 AI 주제의 영화라는 점에서 차별점을 갖는다”라며 “여기에 K-컬처까지 담아내, 국내의 AI 영화 제작 능력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 “고대가요 내용을 바탕으로 현재 지구 환경문제도 제기해 보려 했다”라고 설명했다.

“‘AI로 만든 AI 주제의 영화’라는 점에서 차별점을 갖는다”라며 “여기에 K-컬처까지 담아내, 국내의 AI 영화 제작 능력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 “고대가요 내용을 바탕으로 현재 지구 환경문제도 제기해 보려 했다”라고 설명했다.
저작권 문제도 있었지만 “유료버전 미드저니로 생성한 이미지에 리터치 작업을 더하는 등 다양한 방향으로 해결했다”라고 덧붙였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점도 있었다고 밝혔다. 우선 이미지 생성 AI 자체가 외산으로 ‘K-감성’을 집어넣기엔 무리가 있었다.
신난타 메타버스연구소 부소장은 “우리가 미처 활용하지 못한 ‘챗GPT’와 빙의 ‘달리 3’ 등이 현재는 한복 등 한국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긴 하지만, 그럼에도 한계가 있다. 영화 작업 중에는 더 힘들었다”라고 밝혔다.
생성 AI 기술 발전을 적용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지금 한달은 엄청난 변화가 생기는 기간이다. 오늘 내일이 다르다. 그 사이 DALL-E3이 나왔고, 어도비의 업데이트가 이뤄졌으며, 또다른 모델들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결과물에서는 부족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목표는 분명하다”라고 덧붙였다.
나라지식정보가 이번 작업에 참가한 것은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다’라는 기업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별도의 AI연구소를 운영하며 ‘한국 역사와 언어, 문화 자료 디지털화’ 사업에 주력해 왔다. 그 결과 고대 한문 자료를 80% 이상의 정확도로 인식하는 자체 OCR 개발에 성공하기도 했다.
2008년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과 대통령기록관 등 50여개 기관 600여개 데이터 사업도 수행해 왔으며, 2019년부터 3년간 30여개의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사업을 진행했다.

노하우 및 AI 기술 특허를 바탕으로 2021년부터 메타버스 사업에도 도전, 올해 산하 메타버스연구소도 설립했다. 목표는 ‘멀티모달 AI 개발’이며, AI 영화 제작은 그 도전의 첫 발걸음이다.
손영호 나라지식정보 대표는 “나라 AI 필름의 궁극적 목표는 자체 개발 AI 모델로 가장 한국적인 콘텐츠 결과물로서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며 “향후 고도화한 AI 모델 및 자체 개발 중인 멀티모달 AI 모델을 이용해 높은 퀄리티의 K-AI 영화를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오는 26일 창원 씨네아트 리좀에서 진행하는 상영회에서는 심은록 감독과 함께하는 GV도 관람할 수 있다. 영화나 제작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직접 전해 들을 수 있다.
장세민 기자 semim99@aitimes.com